독후감

달과 6펜스 - 이상과 현실의 선택

pnut 2022. 8. 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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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을 좋아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 그의 취향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봤고 그래서 이 책을 추천 받게 되었다.

 

이전에 민음사 클래식에 이 책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목 때문인데 달과 6펜스라는 이름이 SF 제목 같아서였다. 고전의 주제 의식을 좋아해서 나온지 얼마 안 된 책도 안 좋아하는데 SF 느낌까지 나서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읽어보니 SF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고 달과 6펜스는 달에 간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상향과 현실(페니의 복수형)이었다.



주인공은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은 증권업이라는 멀쩡한 직장을 갖고 있다가 홀연히 집을 떠나버렸다.

책 속의 나는 그 사람이 왜 떠났는지 알아보러 파리로 떠난다.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고 책을 보는 나도 그런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이상을 찾아 떠났다. 그 이상은 그림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러 파리로 떠난 것이다.

파리서 만난 스트릭랜드는 성격이 차갑고 냉소적이었다. 가족에 대한 연민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오로지 그의 관심은 그림 하나.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스트릭랜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 죄책감을 강조해서 그를 돌아오게 하려 했던 나는 오히려 그의 강렬한 열망에 감동했다.

 

그 후 그에 관한 소식과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작품활동에 대해 알게 된다. 나의 친구인 스트로브로부터 어려운 생활의 도움을 받게 되고 스트로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고 부인의 자살로 관계는 파국으로 나아간다. 그 불륜에서도 스트릭랜드는 감정적 요동이 없이 그림에 대해 생각만 하게 된다. 그 후 타히티섬에 가게 되었고 원주민 여성을 아내로 맞아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병에 걸리게 되고 자신의 유작이 되는 그림을 집안 가득 그렸다. 유언으로 그 방안 그림을 불태우라고 부탁을 하게 됐고 그 작품은 영영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사후 그는 천재라는 수식이 달리며 그의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폴 고갱의 생애를 참고했다고 알려졌다. 작중 스트릭랜드와 비슷하게 증권업을 하다가 35살이라는 나이에 전업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고갱은 타히티섬에 들어가서 여러 작품을 그렸고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그림들을 남겼다. 인상파 시대 그림 중에 굉장히 독특하면서 대담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책은 삶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책에선 스트릭랜드 뿐 아니라 좋은 직업이어도 자기의 이상의 맞지 않아 남들의 평판과는 달리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들은 강렬한 열망 열정에 이끌려 당장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끌리는 일을 하게 된다.



현실을 사는 평범한 우리는 과연 그런 열정에 따라갈 수 있을까? 현실에선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 안에서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많다.

나도 직장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만두면 그만인데 왜 그럴까 생각도 했었다. 막상 직장을 들어가 보니 한번 선택한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큰 모험이었다.

 

내가 처음 들어간 직장은 겉으로는 아주 좋은 기업이었지만 막상 그 안은 모순과 부조리가 많은 곳이었다. ‘일이 다 그래’라는 말로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하면서 넘어가야 했다. 선배들처럼 부모님이 힘드시거나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나도 함부로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고 상당히 우울한 생활을 오래 하다가 마음의 병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끔 나에게 좋은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가끔 나도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다. 그 안에서 힘들게 버티면서 사람을 타지에서 사람을 소개받고 적당한 사람과 만나서 결혼하는 게 행복했을까? 나에겐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스트릭랜드의 이야기가 더 재밌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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